영빈이 씨 죽음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
영빈이 씨 暎嬪李氏
조선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생모이다. 사망했을 때 영조는 후궁 제일의 의식으로 장례 지내고 의열(義烈)의 시호(諡號)를 내릴 때 의식을 친히 집행하였다.
출생 - 사망
1696년(숙종 22) ~ 1764년(영조 40)
성격
후궁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
생애 및 활동사항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이다. 어려서부터 궁녀생활을 하다 귀인이 되었으며 1730년(영조 6) 영빈으로 봉해졌다. 4명의 옹주와 후일 사도세자가 되는 원자(元子)를 출산하고 그 밑으로 옹주 하나를 더 낳았다. 1762년 사도세자가 폐위되는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망했을 때 영조는 후궁 제일의 의식으로 장례지냈으며, 이듬해 의열(義烈)의 시호(諡號)를 내릴 때는 그 의식을 친히 집행하였다. 시호 의열과 함께 같은 이름의 사당을 세워 제향 했으나, 1788년(정조 12) 선희궁(宣禧宮)으로 고쳤고 1870년(고종 7) 한때 육상궁(毓祥宮)에 합했다가 1900년에 다시 독립시켰다.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으며, 4명의 옹주를 낳은 뒤 1735년 원자를 출산하여 후사(後嗣)를 기다리던 영조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
1762년 사도세자가 폐위당하는 와중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1764년에 죽자 영조는 매우 애통해하면서 후궁 제일의 예(禮)로 장례하게 하였고, 이듬해 시호로 의열(義烈)을 추증하면서 친히 선시 지례(宣諡之禮)를 행하기도 하였다. 소생으로 사도세자 외에 5명의 옹주가 있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산의 눈물
영빈(남경애 분)이 죽던 날, 서럽게 울던 이산(이준호 분)의 눈물을 닦아준 생각시 성덕임(이세영 분)이 마침내 서로를 알아봤다. 벅찬 감동에 이산은 “너였구나”라며 성덕임을 품에 안았고, 덕임 또한 “저하셨구나”라며 산의 가슴에 기대 미소 지었다.
이날 방송에서 덕임은 제조상궁 조 씨(박지영 분)의 계략에 빠져 궁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앞서 덕임에게 장차 보위에 오를 세손의 후궁이 되어 자신들의 대변자로 나서 달라고 부탁한 조 씨는 덕임이 재차 이를 거절하자 덕임의 방을 뒤졌다.
산은 덕임을 구하기 위해 영조와 알현을 청했다. 하지만 영조는 덕임을 기억하지 못했고, 발꿈치의 힘줄을 끊는 단근형을 명했다. 다급해진 이산은 “전하께서는 제게 백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니 그 목숨을 귀히 여기지 못하면 군주 될 자격이 없다 하셨다. 제발 군주의 시간을 내어달라”라고 부탁했다.
덕임의 방에는 세상을 떠난 영빈의 유품인 서책 여범이 나왔고, 덕임은 꼼짝없이 왕실 물건을 훔친 도둑으로 몰렸다. 문제의 여범은 영빈이 죽은 뒤 슬픔에 빠진 영조(이덕화 분)가 직접 덕임에게 준 것이었지만,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영조는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시간을 번 덕임은 영조에게 조 씨의 명령을 받고 영빈의 빈소를 찾아갔다가 영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일과 영조가 그때 여범을 건넨 일을 소상히 전했다. 그제야 잊었던 기억을 떠올린 영조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왜 네게 영빈의 책을 주었는지 아니? 네가 글씨를 잘 쓰는 궁녀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래서 준거다. 영빈이 글씨를 잘 썼거든”이라고 말했다.
덕임은 영빈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아이가 “산이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던 것을 기억해내고 눈이 커졌다. 먹먹한 그리움이 담긴 얼굴의 산은 “내 이름은 산이다”라며 덕임을 껴안았다.
덕임의 이야기를 듣던 산은 어린 시절 영빈의 빈소를 함께 찾았던 소녀가 덕임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후 별궁에서 덕임과 재회한 산은 “영빈이 세상을 떠나던 날 혹시 배동 아이 하나를 만나지 않았느냐.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냐”라고 물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영조와 사도세자(도상우 분) 사이를 이간질해 결국 사도세자를 죽인 장본인이 조 씨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 씨는 영조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궁녀 영빈을 선택하자 영조와 영빈의 유일한 아들을 죽이는 일로 그들에게 복수했다.
치매가 심해지는 영조는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대리청정을 결심하지만, 좌의정 홍정 여(조희봉 분) 등은 거듭 상소를 올리며 반대한다. 이산은 사도세자의 복수를 위해 반대파를 척결하기로 결심하고 동덕 회에 좌의정의 파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라 명했다.
쓸쓸한 애절한 홍국영의 최후 정조 이산 최측근에서 보필한 실권자
댓글